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아나 해구 (문단 편집) == 챌린저 해연(비티아즈 해연) == 마리아나 해구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, 상당히 큰 [[초승달]] 모양의 바닥에 상대적으로 작은 구멍 모양의 우물형으로 되어 있다. 길이 6~10 km, 폭 2 km 가량인 동서 방향으로 뻗은 길쭉한 분지 세 개가 연달아 붙어 있은 형태의 지형으로 깊이는 10,920m에 달하여 [[에베레스트]]가 들어가도 남을 수준이다. [[1951년]]에 [[영국]]의 해양관측선 '챌린저 8호'에 의해서 발견되었으며 이후 [[1957년]] [[소련]]의 관측선 '비챠지 호'가 챌린저 해연에서 11,034m의 깊이를 관측해 한동안 가장 깊은 심도로 알려졌었다. 그러나 이후 이뤄진 수 차례의 조사에서 비슷한 수치를 얻지 못해 현재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.[* 흔히 알려진 비챠지 해연이 이것인데 사실 챌린저 해연과 같은 곳을 조사한 것이다.] 이후 [[1960년]] 1월 돈 월시와 자크 피카르가 '바티스카프 트리에스테 호'에 타고 최초로 유인 탐사에 성공했다.[* 자크 피카르는 최초로 [[성층권]]을 탐사한 [[오귀스트 피카르]]의 아들로, 오귀스트는 기구를 이용한 탐사에 이어 잠수정 개발에도 많은 기여를 한 바 있다.][* 오귀스트 피카르는 [[과학자]]들의 모임인 [[솔베이 회의]]에 참여한 적도 있으며 [[만화]] [[땡땡의 모험]]에 [[해바라기 박사]]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.] 챌린저 해연의 명칭은 [[미국]]과 [[러시아]]를 중심으로 서로 '챌린저 해연'과 '비챠지 해연'으로 명칭을 놓고 분쟁중이다. 하지만 [[한국]]과 [[일본]]의 [[동해]] [[동해/명칭 문제|표기 문제]]처럼 티격태격 하는 수준은 아니다. [[서양]]에서는 대개 챌린저 해연으로 부르지만 유독 [[한국]]에서는 [[러시아]]식 명칭인 '''비티아즈 해연'''도 흔하게 볼 수 있다. 근자에는 비챠지 해연의 잠수 기록이 비판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 기록이 최대 깊이를 기록한 기록이었고, 특히 [[일본]]에서 이 기록을 적극 인용했기 때문이다. [[한국]]에 비티아즈 해연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일본 서적의 [[중역]] 영향이 컸다. [[파일:MarianaT.jpg]] 챌린저 해연의 제일 밑 바닥의 모습이다. 사진의 탐사정 안에 있는 사람은 [[영화 감독]] [[제임스 카메론]]. [[사진]]은 탐사정과 같이 내려간 무인 탐사기로 찍었다.[* 탐사정이 무언가에 얽혀 부상하지 못하게 될 경우를 위한 안전대책으로 함께 투입한 것이라고 한다.] 제임스 카메론은 해저 탐사 이후에 그 불 같은 성격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. 그리고 2019년에 [[미합중국 해군]] 예비역 [[중령]]인 빅터 베스코보(Victor Vescovo)가 10.92km까지 내려가서 기록을 경신하였다.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16/0001534757|#]] 이 깊은 바닷속에서까지 플라스틱 쓰레기와 비닐 조각들이 발견되어, [[환경 문제|해양 오염]]의 위험성을 알리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. [[파일:마리아나해구_깊이.jpg]] 마리아나 해구와 밝혀진 해연에 대한 인포그래픽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